Chanje Park

나와 사업에 대한 생각들

이제이엔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without comments

주의: 라떼 이야기 100% 함유… 옛날 얘기가 재미없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내가 어떻게 회사를 시작했는지를 남겨놔야 겠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언제 그걸 다 적나 싶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그래도 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기로 했다.


이제이엔이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얘기하려면, 내가 어떻게 처음에 웹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나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모 웹에디터라는 도구로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동네 서점에서 영진출판사에서 나온 나모 웹에디터 무작정 따라하기 책을 사들고 하나하나 따라해가며, 배경음악 붙이고 (비틀즈의 Let it be 미디였음) 프레임을 나누고 웹 카운터를 입히면서 우리 반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담임 선생님에게도 칭찬 받고 친구들에게도 우쭐거릴 수 있었다. 그 때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온라인 상에도 커뮤니티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현실에서 마주칠 일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 수가 있구나. 지금의 클럽하우스와 비슷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IRC 채팅을 하는 커뮤니티 서비스도 있었다. 여기서 채팅창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만들고, 스크립트도 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정보영재라는 걸 하게 된다. 교육부에서 정보화 우수 인재를 뽑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날고 기는 수재들 속에 나는 그냥 ‘광대’였다고 생각한다. 버블 소트가 뭔지도 모르겠고, 주말 반나절동안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할 게임을 찾다가, ‘웹게임’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천년 초 그 당시에 – 공용 PC 환경에서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은 정말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스타크래프트 립버전 정도? 그런데 웹 브라우저만 있으면 바로 옆의 친구와 할 수 있는 게임이 있고, 그걸 심지어 내가 직접 개조해서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요즘으로 얘기하자면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차려서 플러그인을 만들고 modding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Perl 이라는 언어로 웹 호스팅을 빌려서 나만의 웹 게임을 만들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무작정 일본 웹 게임 소스코드를 번역해가며 웹게임을 만들었다. (그 당시 만든 웹게임은 일본의 배틀로얄 영화를 원작으로 한 생존 서바이벌 게임인데, 이 웹게임 버전을 가지고 모바일 버전으로 컨버팅 되어 나온 게 블랙 서바이벌이라고 한다.)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또는 프리 서버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운영자가 가지는 권력의 단맛을 한 번 쯤은 느껴 봤을 것이다. 나도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 만난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 현실에서는 겪어보지 못하는, ‘남에게 인정받는’ 즐거움을 느꼈다. 웹게임을 개조하는 사람들이 모인 포럼에서 팁과 정보를 공유하고, 야매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개조해가며 우리 서버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넣어보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학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WIPI 브라우저를 이용해서 학교 수업 시간에도 틈틈히 웹 게임의 동시 접속자 수가 얼마인지 체크하면서 게임이 잘 되기만을 바랬다. 비기 요금제를 쓰는데 한 번 체크하는데 3알 정도 까였다. 중학생~고등학생 시간의 대부분을 그 목적으로 보냈다.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나 공책에 낙서하고 로직도 짜보고 그랬다. 물론 주변에 이런 걸 같이 개발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내가 혼자서 개발을 했다. (디자인과 퍼블리싱을 도와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지금은 교사가 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우리 부모님은 이런 나의 모습에 크게 염려하셨다. 그래서 내 컴퓨터 사용 시간은 굉장히 제한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코딩을 하려고 PC방에 갔다. 한 달에 3만원 정도 받으면 하루에 천원 정도 씩 썼다.

아시다시피 PC방은 매일 설치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하드보안관에 의해 리셋되던 때다. 컴퓨터 전원을 키고 알FTP, EditPlus를 깐다. 수업 시간 동안 구상했던 로직을 실제로 구현하면서 테스트도 해본다. 개발 환경 갖추고 그런거 없이 그냥 쌩 라이브로 코딩했다. 뭔가 에러가 나면 사이트 우측에 뒀던 카페24 알리미(유저 채팅)가 갑자기 늘어난다. 그걸 보고 서둘러 정상화 시킨다. 남은 시간을 봐가면서 굉장히 밀도있게 코딩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집에 들어가서 내일 만들 기능을 궁리했다. (하지만 짐작컨대 우리 엄마는 담배냄새가 배인 내 옷을 보고 피시방에 갔다 왔다는 걸 아셨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야생에서의 경험을 수년간 하고 나니까, 웹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고 유저에게 보여줘야 할 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유저들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 지 – 상용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굉장히 적은 비용으로 수년 간 경험해 본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때문에 지금도 그 때의 레거시한 방법을 버리지 못하고 요즘의 개발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개발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후회된다. (물론 지금도 FTP를 써서 개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개발에서는 가급적 손을 떼려고 한다.)

암튼, 그때 만든 웹 게임 이름이 카루스였다. 기억으로는 2008년정도부터 만들게 된 것 같고, 경쟁 웹게임도 있었다.

수능은 쳐야 해서 고3은 수능 준비로 날리고, 어떻게 대학에 입성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웹 서비스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때도 아마 유머 사이트를 계속 만들고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개드립 같은 사이트)

그 당시 핫했던 WebSocket이라는 기술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다 마피아 게임을 만들었고, 웹마피아 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디시 갤러리에서 많이들 와서 하고 그랬다. 이거 만들면서도 재밌는 경험들을 많이 했다. 모바일 안드로이드 앱과 웹 간 연동도 시켜보고, 랭크 게임도 만들고, 등등…

그리고 이 때 멘탈 단련을 많이 했다. 지금도 찾아보면 나의 흑역사들이 곳곳에 묻혀져 있는데, 이 당시 내 멘탈은 그냥 개복치였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고 사이트 접겠다고 징징거리고. 어떻게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유저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중고딩때 만들던 카루스를 다시 가져와서 서비스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걸로 크게 돈 벌 생각이 없었다. 맨 처음에 말한 것 같이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서비스를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게임에도 딱히 유료 모델을 붙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공문이 날라왔다. 아래 그 메일이 있다.

지금은 개인(인디개발자)의 심의가 많이 간소화된걸로 아는데, 저 메일을 받을 때만 해도 사업자를 내지 않고서는 심의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사업자를 내면 장학금도 못받고 큰 빚을 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게임을 재밌게 하고 있는 유저 분들을 뒤로 두고 게임을 고작 이것 때문에 닫기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내 이름을 거꾸로 하여 급조한 EJN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게임 개발을 같이 할 사람들을 모아서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이엔을 왜 만들었냐고 물어보면, 사실 딱히 큰 비전은 없었다. 뭔가를 혁신하고자 하는 생각도, 큰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를 사람들이 써 주는게 좋아서, 유저들에게 실시간으로 받는 피드백이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나에게 마치 도파민처럼 느껴졌고 새로운 도전과제가 되었고 그걸 해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 성취감과 재미를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게 이제이엔의 시작이다.

Written by Chanje Park

April 8th, 2021 at 10:3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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